다녀온 맛집

일 년에 한 번은 찾게 되는 맛, 부안 ‘변산온천산장’ 바지락죽

일 년에 한 번은 꼭 부안으로 향한다. 변산반도 묵정마을의 변산온천산장에서 바지락죽 한 그릇을 먹기 위해서다. 해마다 찾는 집이 있다는 것은, 그 맛이 기억 속에서 흐려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집의 바지락죽에는 그런 깊이가 있다.

부안 바지락죽이 시작된 집

변산온천산장은 부안 바지락죽의 출발점으로 알려진 곳이다. 지역 언론 보도에 따르면 부안에 바지락죽 전문점이 처음 생긴 것은 1993년이고, 그 1호가 변산면 대항리 묵정마을의 변산온천산장이었다. 2006년에는 바지락죽 제조 방법으로 특허를 받았다. 이 집에서 죽을 끓이던 이들이 독립해 가게를 차리면서 묵정마을은 ‘바지락죽촌’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부안 앞바다는 넓은 갯벌을 품고 있다. 그 갯벌에서 나는 바지락이 있었기에 바지락죽이라는 향토 음식이 태어날 수 있었다. 한 그릇의 죽이 마을의 이름이 되고, 다시 지역을 찾아갈 이유가 된 셈이다.

[사진 1] ‘특’으로 주문한 바지락죽. 바지락이 넉넉하게 들었다.

특으로 시킨 바지락죽, 세 가지 맛이 겹친다

바지락죽은 ‘특’으로 시키는 것이 좋다. 숟가락마다 바지락이 넉넉하게 걸려 올라온다. 이 죽의 맛은 세 겹으로 읽힌다.

첫째는 바지락의 시원한 감칠맛이다. 조개의 시원한 맛은 호박산과 글루탐산 같은 성분에서 나오는데 쌀이 퍼지면서 녹아 나온 전분이 이 맛을 국물 전체에 고르게 퍼뜨린다. 죽이라는 형식이 바지락 맛을 가장 넓게 펼쳐 보이는 셈이다.

둘째는 은은한 인삼 향이다. 인삼은 향이 강해 자칫 바지락을 덮기 쉬운데 이 집은 쌉쌀한 향이 뒤에서 살짝 받쳐 주는 정도로 양을 맞췄다. 먹고 나면 입안에 향이 오래 남는다.

셋째는 녹두의 구수함이다. 녹두가 더해지면 죽에 구수한 바탕이 깔리고 질감도 한층 부드러워진다. 바다의 맛을 땅의 곡물이 감싸는 구조다. 이 세 가지가 어느 하나 튀지 않고 어울리는 것이 이 집 죽의 깊이다.

탱글한 살, 과하지 않은 양념의 바지락무침

함께 시킨 바지락무침도 좋았다. 바지락살이 탱글탱글하다. 조갯살은 오래 익히면 단백질이 수축하면서 금세 질겨지는데 탱글한 식감이 살아 있다는 것은 익히는 시간을 잘 맞췄다는 뜻이다. 양념은 새콤달콤하되 과하지 않다. 양념이 강하면 바지락은 식감만 남고 맛은 사라진다. 이 집 무침은 양념이 바지락 맛을 거들 뿐 앞서지 않는다.

[사진 2] 탱글한 바지락살을 새콤달콤하게 무쳐 낸 바지락무침.

상을 채운 반찬들

이 집은 곁들여 나오는 반찬도 허투루 내지 않는다. 갈 때마다 맛있게 먹는 콩나물무침은 새콤하면서 알싸한 맛이 매력적이다. 담백한 죽 사이사이에 입맛을 다시 깨운다.

이번에는 주인이 직접 키웠다는 아삭이고추를 아주 연한 된장에 무쳐 냈다. 된장을 진하게 쓰지 않으니 고추의 풋풋한 향과 아삭한 식감이 그대로 살아 있었다. 직접 기른 채소를 내는 상에는 계절이 담긴다.

그리고 뽕순 장아찌가 있었다. 어린 뽕나무 순으로 담근 장아찌인데 짭조름하면서 순한 맛이 바지락죽과 잘 어울렸다. 이 작은 반찬 한 접시에 부안의 오랜 역사가 담겨 있다.

부안의 뽕, 천 년을 이어 온 나무

부안은 오래전부터 뽕나무와 누에의 고장이었다. 고려의 문인 이규보는 『남행월일기』에서 이 지역의 누에치기 풍습을 기록했고 조선의 『신증동국여지승람』과 『대동지지』는 뽕을 부안의 특산물로 꼽았다. 비단이 귀한 옷감이던 시절, 양잠은 나라가 권장하던 산업이었다.

부안에서 뽕나무가 잘 자란 데에는 땅의 조건이 있다. 변산면 유유마을은 바다와 가깝지만 사방이 야트막한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산등성이를 넘으며 찬기가 누그러진 바람이 사철 분다. 온도와 환기가 중요한 누에치기에 알맞은 환경이다. 이 마을은 1970년대 뽕나무밭을 크게 일궈 잠업을 전업으로 하는 마을로 성장했고 지금은 그 양잠 전통을 인정받아 국가중요농업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산업의 모습은 시대에 따라 바뀌었다. 비단 수요가 줄고 누에 판로가 좁아지자 부안은 뽕나무를 버리지 않고 쓰임을 바꿨다. 열매인 오디와 뽕잎을 식품으로 가공하는 길이다. 누에가 농약 묻은 잎을 먹지 못하는 탓에 뽕밭 일대는 일찍부터 친환경으로 가꿔져 왔는데 이 점이 먹거리로서의 뽕에 오히려 강점이 되었다. 부안군은 ‘참뽕’이라는 이름으로 상표를 등록하고 뽕잎과 오디를 지역 브랜드로 키워 왔다.

그러니 이 집 상에 오른 뽕순 장아찌는 단순한 반찬이 아니다. 갯벌에서 온 바지락과 산자락에서 온 뽕순이 한 상에서 만난 것이다. 지역의 바다와 땅이 그대로 상차림이 되는 것, 로컬푸드가 말하는 ‘그 지역에서만 맛볼 수 있는 한 끼’가 바로 이런 것이다.

마감 직전의 환대

이 집은 참 친절하다. 이번에는 대전에서 출발한 탓에 마감 시간이 다 되어서야 도착할 것 같았다. 미리 전화를 드렸더니 흔쾌히 오라고 해 주셨다. 도착했을 때 가게에는 손님이 한 명도 없었다. 그런데도 반갑게 맞아 주고 막 끓여 낸 죽을 내왔다.

하루 영업을 정리할 시간에 손님을 받는 일이 얼마나 번거로운지는 외식업을 조금만 들여다봐도 안다. 그 부담을 웃으며 넘겨 주는 태도는 매뉴얼로 가르칠 수 없는 환대다. 게다가 죽은 미리 끓여 두면 쌀이 계속 물을 먹어 되직해지고 맛도 무뎌지는 음식이다. 마감 직전에도 새로 끓인 죽을 내왔다는 것은 이 집이 맛을 대하는 기준이 시간에 따라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식사 뒤에는 격포의 밤바다

배를 든든히 채웠다면 바로 근처의 격포해수욕장으로 걸음을 옮겨 보길 권한다. 해가 진 뒤의 격포는 낮과 또 다른 얼굴을 보여 준다. 파도 소리만 남은 밤바다를 바라보며 천천히 백사장을 걷다 보면 따뜻한 죽 한 그릇의 여운이 더 길게 이어진다. 저녁 식사와 밤바다 산책을 하나로 묶을 수 있다는 것도 이 집을 찾는 즐거움 가운데 하나다.

[사진 3 ] 식사 뒤에 들른 격포해수욕장의 밤바다.

해마다 같은 집을 찾는 이유는 결국 두 가지다. 맛이 변하지 않고 사람이 변하지 않는다. 변산온천산장은 부안 바지락죽의 시작을 지켜 온 집이면서 부안의 바다와 땅을 한 상에 올려 내는 집이다. 변산반도를 여행한다면 꼭 들러 보길 권한다.

이런 분께 권합니다

  • 부안 바지락죽의 원형을 맛보고 싶은 분
  • 지역 식재료로 차린 정갈한 상차림을 좋아하는 분
  • 변산반도 여행길에 든든하고 속 편한 한 끼가 필요한 분

방문 팁

  • 바지락죽은 ‘특’으로 주문하면 바지락을 넉넉하게 즐길 수 있다.
  • 바지락무침을 함께 시키면 죽과 무침으로 바지락을 두 가지 방식으로 맛볼 수 있다.
  • 늦게 도착할 것 같다면 미리 전화로 확인하는 것이 좋다.
  • 저녁에 들른다면 식사 뒤 근처 격포해수욕장에서 밤바다를 보며 산책하는 코스를 추천한다.

직접 방문해 제 돈으로 먹고 쓴 글입니다. 협찬이나 광고를 받지 않습니다. 가격과 메뉴는 방문일 기준이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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